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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배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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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메모리즈㉘] 오페라 아리아 같았던 한석규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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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7-08
조회수
1,06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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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터뷰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과 취향이 달라서 같은 인터뷰를 두고 호오가 갈린다. 특히나 기자의 경우엔, 질문하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직업적 관점에서 질문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을 때 만족감이 떨어진다. 만일 1시간의 인터뷰 동안 질문과 답이 3개가 가능한 인터뷰였다면, 정말 별로인 인터뷰일까.


대답하는 사람이 배우였다고 해보자. 결국, 기자는 관객을 대변해 묻는 사람이고 배우는 관객이 영화와 자신의 연기에 보다 다가오기 쉽게 말로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기왕이면 질문과 대답이 순조로이 오가는 속에 배우가 생각지 못한 질문을 받고 기자 역시 생각지 못한 답변을 들으며 인터뷰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는 게 좋겠지만, 만일 극단적으로 좋은 질문과 좋은 답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후자를 택하고 싶다. 관객이 들어야 할 건 결국 배우의 머릿속, 맘속 생각과 느낌이기 때문이다.


때로 어떤 배우는 별의별 자극으로 얘기를 끌어내려 해도 뜻과 감정을 말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차라리 그쪽보다는 질문의 기회가 적었다고 해도 자신의 역사와 이번 작품의 연기를 꿰뚫어내는 쪽에 기억해 두고 싶은 얘기가 많다. 심지어 영화 관련 인터뷰에 온 것인지를 잊고 노트북 타이핑을 멈추고, 연기라는 소재를 통해 접근된 인생 철학 강의를 마냥 듣고 싶은 순간이 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절로 내 인생에 대입되며 ’나는 오늘 어떻게 살고 있나‘를 되짚어 보게 하기 때문이다. 매우 드문 경우인데, 그중의 한 번이 배우 한석규의 인터뷰였다.


때는 2019년 3월,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 제작 ㈜리공동체영화사, 배급 CGV아트하우스) 관련 인터뷰 자리였다. 영화 담당 기자들의 한석규에 대한 사랑 또는 인기는 대단해서 50분의 시간에 몰린 기자가 십수 명이었다. 시작 전부터 배우의 답변 길이가 화제가 됐다. 한 질문에 5~6분만 할애해 달라는 바람,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답변,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지만, 조금은 씁쓸했다. 쓸데없는 염려였다. 한석규다, 그는 이 자리를 어떻게 운용하고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나름의 답을 가지고 등장했다.


등장이었다. 젊은 배우도 아니고 아이돌 같은 외모도 아니건만 누군가 등 뒤에서 보이지 않는 조명을 쏴주는 느낌이었다. 아우라였다. 영화 ‘우상’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첫 번째 질문이 던져졌고, 그는 답하기 시작했다. 분명 말인데 노래처럼 들렸다. 맑으면서도 윤기 있는 목소리의 테너가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아리아 같았다. 리듬이 있고 강약이 있고 가슴을 파고드는 서정이 있는 곡조가 10분은 족히 넘게 이어졌다.


“‘우상’은 2년 됐어요, 17년 7월부터. 작년 내내 찍었고. 여름께쯤에 이수진 감독을 만나, 시나리오는 그 전에 받았고. 기대가 됐죠, 저는 일단 신인감독 좋아하니까, 전작이 ‘한공주’니까. ‘한공주’ 봤죠, 답답했죠, 좋았죠! 주제나 어떻게 제작이 됐는지 상상이 되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겠구나. 나중에 들어보니 더한 고생을 했더라고요. (‘우상’) 시나리오 단숨에 읽었죠. 금방 보죠, 이건 시간이 좀 더 걸리죠. 가만있어 봐라, 한 문장 한 문장이 아주 치밀해요. 시나리오 보고 결정했어요.”

한석규는 영화 ‘우상’에 관한 재미있는 감상법을 제안했다. 첫 번째 답이 계속되는 중이다.


“이 영화가… 극장에 관객이 왔어, 여유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돌리는 거예요, 그리고 시나리오를 읽어요. 끝나도 되고, 끝나고 영화상영을 해도 좋아요. 시나리오만 봐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에요, ‘초록물고기’도 그랬죠. 그럼에도 시나리오는 영화로의 완성을 목표로 한 작품이에요. 연극 희곡은 그 자체로 문학의 한 장르이고 출판이 되지만, 시나리오는 그렇지 않아요, 그게 시나리오의 운명이죠, 불쌍한 애야. ‘초록물고기’는 출판을 해도 될 정도의 좋은 작품, 영화지망생들에게는 좋은 텍스트죠. 이창동 감독의 시나리오, 좋잖아요. 그렇게 회자 되는 시나리오들이 있어요. ‘우상’은 오랜만에 시나리오 자체만으로 완성도 있고, (영화에 대해선) 어떤 느낌 받으셨나 모르겠지만 저 또한 비슷한 느낌이었겠죠.”


“시나리오, 희곡, 낯선 장르잖아요. 저희는 직업이라 익숙해서 시나리오 보면 상상을 하니까 라스트 신(마지막 장면) 글로서 읽었을 때 저한테 확 각인되는 인상, 어떤 이미지, 엔딩이 강력하더라고요. 시나리오 덮고선, 연출자가 뭘 얘기하는지는 대번에 알겠어요, 근데 말로 설명하기가…. 직업이 이래서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배우를 하는지도 몰라 말로 못 하니까, 몸으로 액팅 하는 직업이니까. 시인도 그럴 것 같기도 한데요, 다가오는 인상, 그런 것에 민감한 직업이에요. (시나리오를 읽고) 정곡을 찔린 듯한 느낌이었어요, 하고 싶다, 이 작품을 하고 싶다, 관객들에게 보이고 싶다, 내 몸을 통해서 보이고 싶다. 야, 근데 이게 영화가 될 수 있을까, 투자가 될라나, 이것에 공감해 주는 제작자가 있을까. 이수진 감독이 참 땡큐네요, 고마운 거죠. 저한테 맨 처음 (시나리오 줘서). 이런 경험 저런 경험 해 봤기에, 제작이 되면 좋겠다, 공감하는 제작자가 있으면….”


“공감하는 제작자가 있는가가 중요해요. ‘제작자의 영화관에 따라서 영화가 달라진다’라고 우리끼리 얘기를 하는데, 그게 영화의 운이자 운명이겠지, 어떤 제작자를 만나느냐가. ‘우상’은 괜찮은 제작자, 투자배급사를 만난 거예요, CGV아트하우스. 이 영화에 참여한 우리, 모든 사람은 어떤 의미의 작업인지 직감적으로 아니까, ‘아, 이게 정말 소중한 작업이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알기에, 이렇게 ‘하는 여건’이 마련된 것만으로 복 있는 괜찮은 자리다 (했죠). 다 알아요,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특히 신인감독인데, 그분들의 장점이 있죠, 모든 걸 다 걸고 하죠. 자신의 모든 걸 다 쏟아붓는 거지. 신인감독이 작업하면 (몸무게) 5kg 빠져요, 이 감독도 빠진 것 같아요.”


“정성껏…. 최근에 영화 ‘천문’ 찍으면서도 그런 얘길 했는데, 우리는 정성을 다할 뿐이다. 우리는 농사꾼이다, 라고 표현하거든요. 정성을 다해 벼를 쌀을 생산한다, 그다음은 이제 모르겠다, 가 아니라 거기까지다! 저희들은 거기까지구나, 라고 생각을 해요. 정성을 들여 만들었죠. 날씨도 그랬고 예상보다 (길어졌죠), 70여 회로 잡았는데 결국은 오버 돼서 100회로 갔죠. 그래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우상’이라는 영화는.”


오페라의 1막이 끝난 느낌이었다. ‘우상’이라는 시나리오가 한석규라는 배우의 마음을 어떻게 두드렸는지 명확히 전달받았고, 데뷔 30년 차에 ‘농사꾼 정성’을 말하는 대목에선 나의 직업관을 되돌아봤다. 2막에선 어떤 얘기가 이어질까, 기대했다.


한석규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배우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현재까지의 최고로 생각한다면서 80점을 주었고, ‘상의원’은 55점 어떻게 해도 60점 미만이라고 평했고, 지난 2017년 ‘프리즌’의 점수를 묻자 ‘영화에 대해선 3년 뒤 점수를 말할 수 있다’면서도 교도소 안에 ‘영원한 제국’을 건설한 제왕 익호라는 캐릭터에 대해선 65점을 준 바 있다. 아직 3년이 되지 않았으니 ‘프리즌’의 점수를 물을 수도, ‘우상’의 점수를 물을 수도 없는 상황.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또 한 번의 기초를 다지는 질문, 시나리오에 대한 극찬이 이어진 만큼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 그에게로 향했다.


“글처럼 나왔다. 시나리오를 딱 덮고, 정곡을 찔렸다 (했을 때처럼). 지금처럼 이런 액션이에요, ‘하아……’, 깊은숨. 들어봄 직한, 얘기해야 할 (것을 했다). 주제가 뭐냐, ‘뭐 얘기하고 싶어서요?’ 그게 참 중요한 것 같거든요. 이야기, 스토리를 전달하는 영화로서는 그 이야기를 뭘 얘기하고 싶으냐, 테마잖아요. 그 테마가 창작의 입장, 연출자의 입장으로서는 해볼 만한 이야기야? 관객 입장에서 들어볼 만한 이야기야? 가치 있는 이야기야? 저는 늘 그렇게 접근해요. 영화, 드라마, 했고 하고 있고. 그 이야기를 통해 뭘 얘기하려느냐, 그게 중요하죠. 그다음에 그걸 어떤 장르를 통해 하느냐, 웃음과 사랑으로 얘기하느냐 고통으로 얘기하느냐(가 중요하고요). 그런 맥락에서 ‘우상’은 독, 가끔 쓴 약을 먹어야 하잖아요. 써도 많이 쓴 약, 하지만 낫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는 약이라고 판단했어요.”


영화 ‘우상’을 한국영화의 내일을 위해 업계도 관객도 먹어야 하는 ‘쓴 약’에 비유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얘기는 배우 한석규가 왜 ‘우상’을 택했는가에서 왜 구명회가 하고 싶었는가로, 왜 연기가 하고 싶은가로 깊어졌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계속되는 중이다.


“하고 싶었어요, 구명회라는 역할. 전부터 비겁한 역을 해 보고 싶었어요. 그냥 비겁한 게 아니라 생존,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보는 역할을 해 보고 싶었어요. 왜 하고 싶었느냐! 고백 같은데… 아, 이 얘기는 안 할래.”


“살면서 그런 기분 들 때 있잖아요, 여러분도. 왜 하지, 연기를 왜 하지, 내가 이걸 왜 하나, 무엇을 왜 하나. 이게 몸으로 되나, 답이 없는 질문들이잖습니까. 나는 이런 생각들을 왜 하느냐, 나는 성향이 그런 친구니까. 그런 생각 괜찮아요, 재미있어. 나는 그런 시대 그런 동네에서 그런 분들을 부모로 두고 그런 형제를 두고 그러그러한 일을 겪어서 그렇게 컸구나, 그것을 연기라는 일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구나. 내가 연기가 좋아지려면 내가 좋아져야 되겠구나, 날 보여주는 일이니까!”


“전에도 연기만 놓고 본다면 내가 무언갈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한다고 생각했어, 젊었을 때는 연기뿐 아니라 사는 것에 있어서도. 세월이 흐르고…, 공자도 ‘40에 불혹이 됐다’, 자기를 회상하는 말이잖아요, 혹하지 않았다. 50에 지천명, 하늘을 알게 되고, 60에 이순(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 따지고 보면 비슷한 것 같아요. 서른에 연기자로서 맹렬하게 다 할 것 같은. 그러다 40, 건강도 한 번 덜커덕하고, 이걸 관둬야 하나 그만둬야 하나 자신감도 없어지고, 이걸 왜 하나 이런 생각에 휩싸였던 것 같아요. 연기라는 게 모호하게 느껴졌고, 지치기도 했고. 혹한 거지, 뭔가에 혹했겠죠. 오십 줄에 들어서니까 아, 내가 이게 제일 좋아하는 일이구나!”


“그러면서 처음이 생각나더라고요, 처음에 들었던 마음, 초심, 초발심. (19)80년도니까 16살짜리, 하고 싶었었죠. 아, 연기라는 거, 저런 일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뭔가를 보고 들은 거거든요, 뭔가를 보고 반했던 거야. 리액션을 했던 거야. 가만있다가, 연기자가 돼야지, 이랬던 게 아닌 거야. 어떤 공연을 보고 몸에 전율,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전율. 평생 또 경험할 수 있을까? (했던 전율). 16세 소년 때였고 민감하고 감성 풍부할 때고 그랬는데, 중요한 건 보고 ‘리액션’을 했단 거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윤복희의 초연, 유관순기념관 단체관람이었는데, (전교생) 전부 다 보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것도 리액션, 보러 간 것도!”


“둘째 형님이 그림을 했거든, 어렸을 때부터 생각 없이 화집을 봤어요. 미술 전집을 들여놨는데, 볼 것도 없으니 봤는데. 모네, 마네, 고흐, 고갱… 뒤에 보면 그림 설명도 있고. 형 영향을 많이 본 거죠, 막내니까. (그 외에도) 각종 서적 머리말이라도 읽어 보면서, 연기라는 게 경험하는 거니까. 형은 순수 미술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저보다 여섯 살 많은, 저한테는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죠. 그림 하는 사람이니 좀 예민하겠어요. 그림 하는 사람 불행한 사람 많아요, 고독한 작업이니까.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인생에서 영향을 참 많이 받았구나 싶어요.

(연기) 실기시험 보러 갈 때 그 형님이 같이 가 줬어요. 커서 생각하니까 고맙다, 같이 가 주고 시험 보는 거 기다려 주고. 준비도 같이했죠, 필요한 정보도 얻어다 주고. 저에게 첫 질문을 해 준 사람이죠, ‘너 어떤 연기자가 되어 드라마 할 거냐’. 중요한 건 반응을 했다, 산다는 건 반응을 하는 거구나!”


나는 기자라는 직업을 왜 하나, 배우 한석규는 필자의 마음에 씨앗을 하나 던졌다. 어떤 기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 고사시키지 않고 마음의 밭에 심고 물을 주고 빛을 쏘이는 건 필자다. 리액션을 한 거다. 세 번째 질문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 중식, 아들 부남이의 죽음의 진실을 찾으러 다니느라 아침은 굶고 점심(중식)은 1분 안에 처넣는 중식을 한석규가 했다면, 반대로 청와대 시계를 차고 다닐 만큼 최고의 자리로 향한 자신의 영욕을 위해 아들의 죄를 치밀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은폐하는 명회 역할을 설경구가 했다면 어땠을까에 관한 것이었다. 두 번째 질문이 시나리오에 대한 극찬의 와중에 ‘그래서 완성된 영화는 어땠어요?’라는 질문이 제기된 것임을 감안하면, 두 번째 질문이라 해도 무방한 세 번째 질문이었다.


“저 역할을 반대로 하면 어떨까? 많은 분이 해 보실 거예요. ‘천문’의 최민식 선배님과도 마찬가지였는데, 완성된 것을 기준으로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떤 게 더 좋을까? 연출자의 고민이기도 하고 배우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전체로 봤을 때, 큰 그림으로 봤을 땐 뭐가 좋았을까. 근데 다행히 기회를, 나한테 초이스를 먼저 줬잖아요. 난 비겁한 걸 하고 싶었잖아요. 죽는 한이 있어도 살아남는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것이 딱 구명회잖아요.”


“자, 반응한다…이거예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반응하느냐, 어떻게 사느냐겠죠. 그래서 이제 이 세상이 돌아가는 거겠죠. 한 반응이 나와도 안 되는 거고, 그게 우상인 거죠. 모든 사람이 한 반응이 나오면 병든 사회죠, 건강한 반응이 다양하게 나와야 하는 거죠. 어떻게 반응이 나오느냐가 중요해요. 그야말로 그게 인제,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게 숙제겠지, 그게 교육이 될 수도 있는 거고요. 그 사람의 가치관, 그 사람의 인생관, 그 사람의 직업관, 그 사회의 사회관 또 역사관, 그런 거겠죠.”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한석규는 기자의 질문에 바로 답을 한 뒤, 원래 들려주던 줄기로 돌아가 자신의 얘기를 계속하고 있다. ‘우상’ 시나리오를 어떻게 택했고, 구명회를 왜 하고 싶었는지 고백하려다 그 얘기는 잠시 멈추고, 한때는 연기에 대해 마음의 브레이크가 걸린 때도 있었지만 ‘리액션’(반응)이라는 연기와 인생의 초심을 상기해 냄으로써 연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음을 구명회 선택의 바탕으로 깐 뒤, 이제 구체적으로 구명회를 어떻게 표현했고, 왜 선택했는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마치 모노드라마 연기처럼 재연했고, 오페라 3막에 이르러 아리아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구명회는 비겁하고 교활하고 그런 반응을 내는 인물이에요. 구명회는 계속해서 반응할 일이 생겨요, 지하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시체 ‘윽, 윽’. 그럼 (아들) 요한이, 요한이를 만나, ‘본 사람 있어?’. 그다음엔 자수? 에이 씨, 완전범죄! 누가 봤대? 어떡하지? 잡아 죽여야지! 죽일라 했는데 좀 무서워, (목격자 부남 얼굴에) 불 비추니까 사연이 있는 애야. 누굴 죽였대, 그럼 안 죽여도 되겠구나, 근데 뒤에, 심부름 새끼가 ‘윽’, 어떡하지? 감춘 손이 주머니에 녹음하고 있나? 용구야, 확 죽어 버려! 헉, 중식이가 알았어? ‘개떡’ 된 거예요. 근데 중식이 나한테 오더니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어?”


“자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 전부 이상한 반응을 하는 거예요. 어느 한순간에 괜찮은 반응을 했다면 ‘우상’이 안 만들어지는 거죠, 그 비겁함의 폭주를 멈출 수 있었죠. 멈춰야 하지, 영화는 가짜를 통해 진짜를 얘기하고 싶어 하는 거니까요. 가짜를 통해 진짜의 정곡을 찌를 수 있는 게 이 일의 매력이다, 그걸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이게 이 영화, 특히 구명회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던 거죠. 엔딩은 드디어 ‘반응의 완성’. 그리고 그놈은 죽었다, 뭔가 다 이룬 것처럼 했지만.”


엔딩 장면 얘기까지 나왔으니, 감상에서 빠져나와 질문해 보았다. 설사 질문이 없다 해도 이어질 강연이었지만, 준비해간 많은 질문 중에 이거 하나는 묻고 싶었다. ‘굉장히 무서운 악인이고 소시오패스인데, 이걸 관객이 처음부터 알면 안 됩니다. 하지만 나중엔 고개가 끄덕여져야 하고 처음부터 구명회 안에는 그런 무서움이 있어야 했어요, 싹으로라도. 단순히 감정의 변화와는 다른 것이라 격변으로 보이지 않게 연기했어야 했는데, 어떻게 접근하고 표현하고자 했나요?’.


“칭찬이잖아요, 감사합니다. 역할 바꿨으면 어떠했겠느냐, 제가 하고 싶은 비겁함에 더해 ‘우상’의 메시지를 훨씬 더 전달하는 ‘플러스 알파’가 있습니다.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그 인간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되는 거죠. 구명회에게는 이런 사건이 없었으면 괜찮은 정치인이 될 수 있었겠으나, 하지만 결국에는 어떤 리액션을 해야 될 때는 결국은 그런 반응, 비겁한 반응을 드러내게 되겠죠. 그런 생각 외에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안 해 봤어요. 아, 이미지 트레이닝. 산다는 것은 직접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말씀드렸지만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석규는 구명회라는 인물을 영화 안에 탄생시킨 방법으로 ‘이미지 트레이닝’ 외에는 없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다른 모든 캐릭터도 마찬가지 아닐까, 짐작했다. 인생에서도 이미지 트레이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플러스 알파’에 대해선 이제 구체적 설명이 이어진다.


“같은 시대를 사는 관객들에게 영화나 캐릭터가 익숙해지는 ‘플러스 알파’가 있다면 그 사람의, 저의, 애티튜드, 무슨 태도를 지니고 사느냐를 아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 사람의 ‘관’을 아는 거잖아요. 저 사람은 저런 생각으로 사는구나, 저런 생각으로 하는구나, 를 알 수 있잖아요. 정치인이든 스포츠선수든 음악가든 10년에서 길게 20~30년을 보다 보면 당신의 관을 알겠소, 가 되는데. 저 같은 경우 25년 됐단 말이에요. (최)민식이 형 보면, 알겠어요. 조금 더 하면 같은 동료지만 존경합니다, 같은 동료로서. (설)경구, 딴 거 모르겠고 같은 액터로서 존경해요, 오케이 인정 플러스 존경! (천)우희, 많이 후배지만 그만한 여자 후배 연기자가 어디 있습니까. 봐요, 잘해 보겠다고 눈썹 다 밀고. 야, 이제 너 그만해, 너무 많이 했다, 할 만큼 열심히 했어요. 은혜 갚느라고, ‘한공주’에 대한, 연기자로서 왜 그런 마음이 없겠어요. 우희가 제일 늦게 캐스팅이 됐어요. 이 배역은 살짝 두려울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밑천이 다 드러나는 역할이거든. 고맙기도 하고, 조금 과하게 표현하면 존경해요, 십몇 년 먼저 시작했을 뿐이지 동료잖아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관객이 제게 서로 신뢰,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장점이에요, 바로 그게 단점이고요. 익숙하다는 것, 최고의 장점이지만 단점입니다. 오늘 액션, 리액션 말씀드렸잖아요, 리액션이 다다(라는 게 저의 답입니다). 자, 보고-듣고-하자! 주문처럼 해요. 보고, 듣고, 리액션 하자. 저 사람이 내게 액션 준 거 정확히 보고, 정확히 듣고, 하자! 그게 리액션이에요. 전에는 보는 척, 듣는 척한 거죠. 안 보여요, 안 들리고. 그러나 이제 보고, 듣고, 합니다.


리액션이 전부다. 하나의 정제된 ‘이론’은 세상의 많은 부분을 읽어낼 수 있는 설명력이 큰 ‘틀’이 된다. 그는 기자의 질문들과 상관없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었기에, 어떻게 선택하고 연기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의 답을 ‘리액션’에서 찾았기에, 모든 답이 ‘리액션’으로 수렴되고 있었던 것임을 인터뷰 끝날 즈음에야 알았다.


이수진 감독이 내민 시나리오에 출연으로 리액션 하고, 구명회라는 인물의 비겁함에 대해 이미지 트레이닝만 해서 현장에 간 뒤 상대 배우의 액션을 정확히 보고, 듣고, 리액션 하는 것으로 자신의 액션을 한 것이다. 인생도 그렇게 액션과 리액션으로 선택하고 반응하며 살아갈 것이다.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나의 액션에 몰입해 살아오지는 않았나, 진정 상대의 액션을 집중하며 살고 있나. 어떻게 살 것인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질문을 한석규는 우리에게 던졌다. 답을 통해 질문했다. 질문으로 그날의 오페라는 막을 내렸다.


출처 : https://www.dailian.co.kr/news/view/989361